여러 방식으로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일제에 저항하고자 한 손기정.
손기정은 " 내가 1등을 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경기 후 바로 체포됐을 거다." 라고 말했는데요.
손기정 선수는 자기가 체포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행동들을 했던 겁니다 .
이미 세계적 선수로 명성을 얻은 손기정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았을 일제,
그렇다면 귀국 이후 손기정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일본을 대표해서는 뛰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요? 1940년 손기정은 뜻밖의 선택을 합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마라톤을 그만두고 조선저축은행에 취업한 손기정. 이제는 마라토너가 아닌 은행원이 되어버린 것.
혹시라도 손기정이 문제를 일으킬까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한 것.
결국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마라톤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택해야 했던 손기정. 그렇게 선수 생활을 강제로 포기했을 때 손기정의 나이는 겨우 25살이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는 최전성기의 나이에 달리기를 멈춰야 했다.
1945년 광복 이후 손기정이 깜짝 놀랄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라손은 당시 마라톤을 부르던 말입니다. 손기정이 남승룡 등과 함께 조선 마라톤 보급회를 결성한 것. 한마디로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
손기정은 어떻게 갑자기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사실 손기정 선수는 마라톤을 향한 꿈을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습니다. 광복 이후 조선인 체육 단체 설립이 활발해지면서 손기정 또한 자연스레 현장에 복귀하게 된 것.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이후 한번도 잊지 않은 손기정의 오랜 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우리나라 선수가 국제 무댕 출전해 당당히 우승하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제자들을 지원한 손기정. 많은 인재들 중 손기정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선수는?
그렇다면 손기정은 서윤복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한 거일까?
많은 사람들이 운동선수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는게 다른데
동현은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 또한 재능의 영역이라고 하네요.
서윤복이 지닌 가장 큰 재능이 바로 성실함과 근성입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던 서윤복.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닮아 마음이 더 갔을지도.
야간학교를 마친 후 힘든 몸을 이끌고 서윤복이 향한 곳은?
어려운 환경에도 최선을 다하는 서윤복을 눈여겨본 손기정.
베를린의 영웅 손기정은 제자들에게 어떤 훈련을 시켰을까?
그리고 본격적 훈련이 시작되기 전 손기정은 선수들에게 이걸 시킵니다.
아침 일찍 애국가를 부른뒤 동네 뒷산을 오른 손기정과 선수들, 숨을 헐떡이며언덕을 오르는 선수들에게 손기정이 외친 말,
그렇게 강한 정신력으로 지옥 훈련을 소화해 낸 선수들, 손기정이 무리한 훈련을 시켜도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솔선수범으로 월클 손흥민을 길러낸 일명 손웅정 훈련법이랑 같네요. 그리고 손기정은 훈련만큼이나 선수들의 이것에도 특히 신경을 씁니다. 바로 선수들의 기력을 보충할 특제 보양식. 부족한 단백질을 채워주고 염분을 보충해줄 손기정표 특식인 삼계탕.
1947년 어느 날 손기정에게 날아온 예상 밖의 엽서 한장?
엽서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마라토너 존 켈리.
손기정과 존 켈리 두 사람은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축구로 치면 유니폼을 교환한거죠. 흔쾌히 존 켈리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내어준 손기정.
그로부터 10년후 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차지한 존 켈리.
존 켈리는 손기정이 준 운동화 기운 덕분에 우승한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엽서를 보낸 겁니다. 존 켈리의 엽서에 적힌 한 부분을 보고 눈이 반짝인 손기정.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미국 보스턴에서 매년 4월 셋째주 월요일 열리는 대회로 세계 4대 마라톤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죠.
그런데 손기정은 왜 존 켈리의 엽서를 보고 눈이 반짝였던 걸까? 손기정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엽서를 통해 처음 안거에요.
1945년 광복 이후 국제 대회에 출전한 적 없었던 한국.
자신의 후배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나갈수 있는 국제대회가 있다는 거을 알게 된 손기정.
그런데 손기정의 계획이 시작부터 틀어질 위기에 빠진 이유가 뭘까요?
여권은 해외로 나갈 때 우리나라 정부가 발급해주는 건데 그런데 당시엔 아직 공식적인 우리 정부가 들어서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정부 대신에 38선 이남을 통치하고 있던 미군정은 한국인의 해외 출국을 금하던 상태.
손기정은 고심 끝에 직접 미군정청을 찾아갑니다. 다행히 베를린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에게 호의적이었던 미군정.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위엄. 그렇게 여권을 대신할 수 있는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선수단. 그리고 미국에 가서 사용할 자금 역시 미군정청을 통해 해결합니다.
일본과 미국 각 도시를 경유하며 보스턴으로 향한 손기정 일행. 여행증명서를 통해 순조롭게 하와이에 도착한 세 사람.
그런데 손기정 일행이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돌발상황이 있습니다.
손기정 일행의 짐을 빼앗고 심지어 물건들을 뒤지는 공항 직원, 사실 미군정청에서 발급한 여행증명서는 하와이까지만 통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무도 영어를 모르니 이유조차 알기 힘든 상황. 이대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결국 모든 짐을 빼앗긴 채 하와이 공항에 발이 묶인 세사람, 그런데 그때 손기정의 귀에 들려운 반가운 소리 한국어.
그 방송을듣고 한국 교포 목사가 손기정 일행을 도우러 온 것.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들을 극복하며 마침내 보스턴에 도착한 손기정 일행.
총 네군데의 경유지를 거쳐 무려 일주일이나 걸린 보스턴행.
그런데 무사히 보스턴에 도착하긴 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깁니다.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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