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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국사, 경성의 천재 예술가 나혜석은 왜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나. 여자로서 조선 최초로 전시회를 연 예술가의 정체는?

by 속좁은펭귄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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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3월 21일 매일신보. 무려 5000여명의 관람객이 몰린 것.

게다가 조선 최초라는 타이틀까지 가진 전시회?

 

 

그리고 1921년 3월 18일 동아일보.

 

 

여자로서 조선 최초로 전시회를 연 예술가의 정체는?

조선의 천재 예술가라 불린 인물 나혜석님입니다. 

 

 

여전히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최초의 조선 여성 서양화가입니다. 그림뿐 아니라 글쓰는 능력도 출중하다고해요.

금기를 깨는 충격적인 글로 연일 화제였는데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셀럽이에요.  그런데 파격의 대명사 나혜석은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됩니다. 

경성의 천재 예술가 나혜석은 왜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나.

될성부른 떡잎, 나혜석.

 

1896년 4월 18일 수원에서 유명한 집안의 다섯째 딸로 태어난 나혜석.

나 참판 댁이라고 불리는 관직이 높은 명문가 집안으로 

 

 

심지어 부유하기까지 했던 나혜석의 집안. 한마디로 조선 명문가댁 규수였죠.

1906년  11살이 된 나혜석, 수원 삼일여학교에 입학합니다.  나헤석이 유독 두각을 보인 과목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모델 삼아 기름을 그렸던 나혜석, 그림을 가장 잘 그린다는 선생님의 칭찬까지,

 

 

1910년 어느덧 15살이 된 나혜석.

나혜석이 고향 집을  떠나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경성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것. 

당시 조선 여성에겐 드문 경성 유학길에 오른 나혜석. 학업에 욕심있는 여학생들이 서망하던 진명여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18살이 된 나혜석은 신문에 실리기게 됩니다. 

 

1913년 4월 1일 매일신보.

 

 

졸업시험은 평균 100점 중 99점. 미술 뿐만 아니라 공부까지 잘했던 엘리트 나혜석. 그런데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수원에 있는 부모님이 나혜석에게 시집을 가라고 한 것. 

당시에는 20살만 되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는데 18살이면 결혼하기 딱 좋은 나이인 거죠. 그런데 18살의 나혜석이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까 혼기를 놓칠까 봐, 학업을 중단하게 한 부모님. 부모님의 도움없이는 학업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죠. 결혼이란 이유로 공부를 그만둘 수 없었던 나혜석. 그런데 나혜석에게 돌파구가 생깁니다. 바로 일본 유학이죠. 

당시 조선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본 유학, 더 큰 배움의 기회를 열어준 사람은?? 바로 둘째오빠 나경석이라고해요.

 

 

완강했던 아버지를 설득해 일본 유학을 갈 수 있게 해준 것. 

1913년 4월 18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도쿄로 유학 온 나혜석이 입학한 학교는?

 

 

당대 최고의 도쿄사립여자미술학교!!

당시 일본에서 여성이 그림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교였다고 해요. 파격적으로 서양화 전공을 선택한 나혜석.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정학을 선택, 사회적 통념을 순응하지 않고 배우고 싶은 분야를 선택한 것. 

1914 년 4월 7일 매일신보.

 

 

일본 여성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뒀다며  신문에 실린 나혜석. 경성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을 나혜석. 그런데 재능을 펼치던 나혜석에게 다시 찾아온 학업 중단의 위기가 옵니다.  또 다시 발목을 잡은 결혼 문제. 학업을 중단할수 없다며 버티는 나혜석. 나혜석이 결혼에 회의적인 또 다른 이유는?

 

 

나혜석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어린 첩까지 있었다고 해요. 심지어 어린 첩에게 집까지 얻어줬던 것.

1914년 민적에서 첩란이 삭제되며 공식적으로 폐지된 축접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행했다고해요.

가난한 남자들도 첩을 두는 경우가 상당히 있었다고 해요.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이혼 사유로는 인정되지 않았던 축첩.

 

 

결국 아버지를 꺾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된 나혜석.

1915년 학업을 접고 조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나혜석은 아버지의 강요대로 결혼했을까?

학업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나혜석은 아버지의 간섭에서 자유롭기 위해 직접 학비를 벌기로 결정합니다. 미술교사로 취직을 하게되죠.

 

 

자신의 대표박품을 발표한 나혜석, 자신이 처한 암담한 현실을 담은 자전적 소설도 씁니다. 

1918년 3월에 발표된 소설 경희.

 

 

조선의 낡은 관습에 억압받던 여성의 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당시에 여자들이 배워봐야 가정으로 돌아갈 텐데, 직업이 뭐가 필요해? 무슨 교육이 필요해? 여성에게 요구된 낡은 사고방식을 소설을 통해 비판한 나혜석.  자신을 억압하는 조선 사회에 던진 파격적 메시지.

 

 

훗날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버리는 운명적인 마남을 하게 됩니다. 

나혜석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인 남자의 정체는?

 

 

부산의 부유하고 명망 높은 집안의 자제인 김우영.

일본 최상위 명문대학인 교토대학교 법학부 제학,  두사람은 과연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그러나 김우영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나혜석. 계속해서 구애를 합니다.  무려 2년동안 구애를 했다고해요.

누군가의 아내이기보다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나혜석.

 

 

조선으로 돌아온지 1년뒤 1919년  나혜석이 감옥에 잡혀갑니다. 

나혜석의 죄목은 독립운동, 한반도 전역에 들불처럼 번진 만세 시위. 3.1 운동 당시 나혜석이 한 일은?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위해 개성과 평양에서도 활동한 나혜석. 결국 일제에 검거된 나혜석과 동료들.

죄를 입증할 증거 부족으로 5개월 후 풀려났다고해요. 옥고를 치르고 화가로 지내던 중 나혜석을 급히 찾아온 인물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혜석을 잊지 못한 김우영

 

 

김우영의 청혼에 나혜석은 어떻게 답했을까? 거절합니다. 김우영의 청혼을 승낙할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출처: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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