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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더 컬렉션. 박수근 화백 컬렉션. 자작나무 숲.

by 속좁은펭귄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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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같은 전경과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아름다운 이곳, 한반도의 배꼽인 강원도 양구.

 

 

박수근 화백 컬렉션.

한국의 정서가 느껴지는 작품들, 서민들의 일상을 작품에 녹여낸 화가. 

 

 

혹시 아트테크라고 아시나요? 아트테크의 시작을 연 대표 화가가 박수근이라고 해요.

아트테크란?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다양한 예술 분야에 투자하는 재테크 방식입니다. MZ세대까지도 매료시킨, 

 

 

아트테크의 황금기였던, 45억 2000만원.

 

 

그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정점을 찍은 후 8년간 부동의 1위

그 외에도 아트테크 열풍에 한몫한 박수근의 작품들.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RM의 작업실. 그곳에서 발견된 나무와 세 여인 판화.

그리고 박수근 전시회에 가서 직접 SNS에 작품 인증샷도 게시.

 

 

이게 바로 선한 영향력이죠.

RM이 사랑한 박수근미술관이 박수근 화백의 생가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박수근의 예술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에 세워진 박수근 미술관. 실제로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 그리고 강원도 양구가 돌이 많아요.

 

 

 

박수근의 호도 아름다운 돌이라는 미석입니다. 

 

 

양구 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그. 박수근의 흔적을 따라 출발해봐요!

 

 

왜냐면 박수근 화백의 기름이 이런 식으로 거칠고 투박한 화강암에 그린 듯한 작품들이죠. 큰 화강암을 쌓아 올렸을 수도 있는데 작은 화강암을 오밀조밀 쌓아 올려 박수근 작품이 절로 연상되는 돌담길.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사뿐히 따라가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경.

새하얀 껍질이 매력적인  자작나무 숲.

 

 

박수근 작품의 큰손 컬렉터인 홍라희 여사의 제안으로 생긴 자작나무 숲. 박수근을 향한 존경과 팬심으로 탄생했다고 해요.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는 나무가 많이 나오는데  고향이 강원도 양구고 나무가 굉장히 많아요. 유년 시절 박수근 곁에 늘 있었던 나무. 어릴 적부터 박수근의 꿈은 화가였어요. 학교에서 처음 마주한 미술 수업.

학교에서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가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어졌습니다. 박수근의 아버지는 광산 사업을 벌이다. 안타깝게 실패하고 설상가상 홍수로 인해 남은 논밭마저 떠내려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집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미술 독학을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미술을 도화라고 불렀어요. 교과 성적은 보통이었는데 도화 성적만큼은 최상급이었죠.

담임 선생님도 응원해주고 일본인 교장 선생님도 집에 찾아오셔서 

 

 

그야말로 떡잎부터 알아본 미술적 재능.

박수근 화백이 12살이 되었을 때 화가를 꿈꾼 진짜 이유는?! 밀레의 만종을 보고!

 

 

12살 때 밀레의 만종을 본 순간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해요. 밀레의 작품 사진으로 직접 만든 화집.

 

 

서양 명화집에 실린 그림을 따라 그려보며 밀레를 닮고 싶은 열망을 담은 화집.

밀레가 되게 중요해요. 밀레와 박수근을 떼어놓을 수 없는 평행이론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농촌 출신 화가인 밀레와 박수근.그리고 그들은 서민을 그렸다. 소박한 일상과 정감 어린 우리네 모습을 투박하지만 따듯하게 그려낸 밀레와 박수근.

박수근이 정식으로 화가가 된 시점, 그 당시에 대회가 있었어요. 조선미술전람회!!

 

당시 화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등용문이자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큰 대회인데 1932년 18세에 첫 입선을 하게 됩니다. 

 

 

독학으로 일궈낸 인생 첫 쾌거. 흑백 자료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원본은 수채화가 전쟁을 겪으며 많은 작품이 소실된 상태라고 해요. 채식된 원본은 어땠을지 잠시 상상해보게 되는,  그림은 좀 역설적이에요. 제목은 봄이 왔는데 풍경은 겨울이죠.

 

 

느낌이 오묘하지 않으세요? 

 

낙선의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시련.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유방암 판정, 투병 생활 후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박수근의 어머니.

 

 

 

그때 살림을 장남인 박수근이 다 도맡아서 하게 됩니다. 빨래부터 물길어오기, 밀가루도 없던 시절, 밀을 직접 맷돌에 갈아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해결합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박수근. 게다가 가세는 점점 더 기울어지고,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살던 집마저 헐값에 팔아버린 그리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박수근.

 

 

박수근은 홀로 춘천으로  작품 제목처럼 쉽게 오지 않았던 그의 봄.

1936년 22살 무려 4년만에 입선하게 됩니다. 

 

 

조선미술전람회 두 번째 입선, 

 

 

두 그림에서 재미있는 차이점이 발견되는데,  다부지고 일잘하고,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여인에게 투영, 소외되고 나약한 모습이 아닌 가족을 위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을 표현한 것.

 

 

조선 특유의 향토색을 표현, 여인의 진실함을 화폭에 그려낸 박수근. 비슷한 주제, 다른 느낌이죠. 밀레에게서 주제 의식만 빌려왔을 뿐, 표현 방식도 화풍도 전혀 다른, 자신만의 개성으로 얻게 된 재입선의 영광.

박수근만의 독특한 예술관, 그 시작을 알리는 시기가 아니었을지.수많은 인생의 시련 속에서 자신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간 불굴의 화가 박수근.

 

출처: 선을 넘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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