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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오항녕 교수의 조선왕들의 차이나는 클라스, 경연

by 속좁은펭귄 202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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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00년의 저력, 조선왕들의 차이 나는 클래스, 경연에 대해서입니다.  대통령 국무회의의 사진들의 공통점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의견을 듣는 자문회의죠. 국정 운영시 결정하기 어렵거나 이해관계가 대립하거나 기본 원칙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문회의죠. 자문회의와 유사한 조선의 정치제도가 경연입니다. 

 

 

 

조선시대 경연의 의미는?

경서경에 자리 연으로 왕이 공부하는 자리이자 정책 세미나의 장을 뜻합니다. 함께 모여 공부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 규정된 경연은 강독 논사. 강의를 들으며 책을 읽고 토론 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 배우고 읽어야 토론과 생각이 가능하잖아요.

조선시대를 보면 경연을 제대로한 시대와 잘 되지 않은 시대로 나뉘게 됩니다.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경연이고 조선시대 경연이 갖는 의미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뭐가 있을까요?

 

조선왕조 오백년의 저력, 배움을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다.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 모여 묻고 답하며 살 만한 나라를 논하던 자리인 경연, 평화로운 시대에는 지키는 길을 어지러운 시대에는 견디는 길을 조신시대 경연의 지혜에서 오늘을 묻다.

 

 

경연이 이뤄진 현장 속에서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인데 많게는 하루에 다섯 번 기본 하루 세 번이라고 해요. 경복궁 사정전, 창덕궁 선정전, 왕의 집무실에서 경연이 이뤄집니다. 누구와? 왕과 십 수 명의 신하가 함께 공부하고 토론을 했던 자리입니다. 

 

 

격의 없는 토론의 장이었을거에요. 실제 사례로 알아보면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폐위 후 인조 즉위 직후 경연 현장 맛보기

 

경연의 주요내용은 광해군 대의 정치 혼란을 고발하고 외척, 상궁 등 문고리 권력에 대한 경계인데 임금은 대답하지 않았죠.

 

 

신하의 충언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왕 다움이다.  왕의 모든것은 실록에 기록되죠. 왕도 사람인지라 힘들었겠죠. 왕을 괴롭힌 경연을 왜 했을까요? 경연을 보면 유일하게 출신 성분이 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왕이죠. 조선의 관료들은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되는데 왕은 과거시험을 안보죠. 조선시대 모든 관료들은 20년 이상 공부하여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등용되고 조선의 왕은 세습되죠. 조선시대 유일한 세습권력이 왕권이에요.

왕과 신하의 지식수준의 격차는 당연하죠. 경연을 왜하는지 첫 번째 이유는 왕의 자격을 함양하는 장치인 겁니다. 조선시대 왕은 최고의 권력이자 기득권자죠. 이 땅은 모두 내 땅이고 백성은 모두 내 신하잖아요. 법으로 정해진 형벌 외에 언제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죠. 2. 왕의 폭주를 막는 제어장치입니다.  경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배움의 본질은 상대의 비전, 지식, 가치에 대한 동의입니다. 

세 번째는 사회의 공동선을 구축하는 장치입니다. 왕과 신하가 함께 앉아 배우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합니다. 

경연은 중국 한나라에서 유래되었고 고려시대에도 존재합니다. 불교사회 고려의 최고 지식층은 승려였는데, 승려에게 가르침을 받은 왕과 신하, 고려시대 대표 고승인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 고려의 경연은 승려가 주관하는 법회였죠. 조선 건국 후 불교사회에서 유교사 회로 전환되었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정치, 경제, 사상을 정립하는 방편으로 경연을 제도화합니다. 

경연을 제대로 한시대와 잘되지 않은 시대를 보면, 

 

 

조선시대 국정 운영의 중심축이었던 경연, 그곳엔 어김없이 사관이 참석하여 경연이 이뤄진 날짜와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죠. 조선실록에 경연이 등장하는 횟수는? 36000여 건이라고 해요.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대체로 경연을 많이 한 시대는 백성의 삶이 안정적이었다고 해요. 대표적인 왕이 세종이죠.

 

 

경연을 대하는 세종의 열정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읽기는 읽었으나 또 읽고 싶다,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

격의 없는 소통은 위대한 왕의 덕목 중 하나죠. 활발한 경연을 통해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세종. 학자들과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해요. 재임기간 내내 열린 경연이 약 2300회. 세종대에 등장한 경연 전임관, 조선 초 경연을 담당한 관청인 집현전, 한글뿐만 아니라 의학, 농업 등 나라의 기틀을 세운 각종 서적을 편찬했죠.

집현전은 고려 때부터 이미 존재한다고해요. 기틀을 마련한 건 아버지 태종이에요. 인재 풀을 서서히 만들어 경연을 장려한 태종, 이를 토대로 세종 2년 집현전을 본격적으로 재정비합니다. 궁궐 안에 별도로 관사를 마련, 경연 전임관을 두기 시작하고 있다고 해요.

 

 

건국 초기 인재가 부족했던 조선, 인재를 육성하자, 문관 가운데 능력 있고 나이가 젊은 사람을 선발, 학문 연구에 매진하여 임금의 자문에 대비하도록 함.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호칭이 대제학이죠. 대제학의 별칭이 문형이에요. 학문의 저울이요.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데 영의정보다 영예로운 자리입니다.  세종 대에 체계적으로 조직된 집현전의 전문 연구 집단.

왕이 정무를 보던 경복궁 사정전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집현전,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을 중심으로 백성들을 위한 현실 정치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고 연구,  경연 관청, 전임 관원 세종 대에 경연의 기틀이 만들어진 후, 본격적으로 제도적 정비를 시작합니다. 

 

 

단종 이후 경연의 틀을 확대한 사람이 성종이에요. 경연 출석 왕인 성종은 제9대 왕이죠. 성종이 25년 재위 기간 동안 경연에 출석한 횟수는? 9242회라고 해요. 실록 등장 횟수= 경연 참석률? 반드시 비례하진 않지만 경연을 중요시했음은 알 수 있죠. 조선실로에 언급된 3만 6천여 건 전체 경연 횟수 중 성종은 9천2백여 건으로 약 4분의 1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보충수업까지 개설한 성종은 야대는 밤에 만나 공부하고 소대는 왕이 부르면 수시로 열리는 세미나죠. 상시 학습 체제를 구축함. 누구보다 경연에 열정적이었던 성종, 성종의 성은 이룰 성이에요.

 

 

대표적으로 경국대전을 완성, 여러 제도를 정비하여 안정적 기틀을 마련,  경연은 흥망성쇠의 척도입니다. 경연을 통해 끊임없이 함께 소통하고 고민하는 시대와 불통의 시대는 천지차이입니다.  성종이 경연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독특한 공부법?! 소리 성에 읽을 독,  소리 내어 읽는다.

 

 

조선시대 널리 퍼져있던 암기법으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에 붙고, 시대를 앞선 오감 공부법이죠.

세종과 성종은 경연이 잘된 대표적인 시대입니다. 

 

 

<출처: jtbc 차이 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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