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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장정아교수의 민주화 기로에 선 홍콩, 어디로 가나?

by 속좁은펭귄 2020.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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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홍콩의 밤거리나.. 홍콩여행, 줄서서 먹는 에그타르트?

홍콩하면 쇼핑이죠? 홍콩의 명물 심포니 오브 라이트까지~ 매일밤 펼쳐지는 멋진 야경으로 활기가 넘치는 화려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죠

한번쯤은 가봤을 가까운 도시인 홍콩.

우산혁명이 시작된 시기는 2014년부터. 그때는 노란색이었는데

작년부터 주로 검정을 든 홍콩 사람들.

현재 홍콩 시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2019년 전 세계가 주목했던 홍콩 민주화 시위. 점차 격렬해졌던 정부와 시민의 충돌.

실제로 다니엘이 홍콩 유학생을 인터뷰했는데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되고 있다고하네요.

홍코시위의 모든것을 명쾌하게 풀어줄 강연자.

중국과 홍콩의 역사를 발로 뛰며 연구한

2019년 국제적 이슈였던 홍콩 민주화 시위. 요즘 홍콩의 상황은? 시위는 계속되고 있고 작년 말부터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아 잘 모르지만

한번도 중단된 적 없는 시위. 코로나19 사태로 더 강해진 홍콩 정부에 대한 불신.

변화를 위치며 여전히 진행중인 시위.

올해 2월 29일 홍콩 시위현장.

위협받고 있는 일상의 거리. 최루탄이 난무하는 위험한 상황임.

완전히 변해버린 홍코의 거리. 20년동안 홍콩에서 현장을 연구.

홍콩은 굉장히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는데 약 15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됨.

홍콩인은 누구인가.

복잡한 역사를 거치며 정체성 혼란을 겪은 홍코인. 매년 발로 뛰며 홍콩인들을 심층 취재함.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현장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반에 평화시위를 지향한 홍콩인들.

2백만명이 모인 현장을 목격.

홍콩 역사상 최대 인파가 모인 시위.

홍콩인구가 약 750만명이에요. 홍콩 인구 약 3명중 1명이 나온것. 홍콩 정부의 통제로 불가능해진 대규모 집회

여전히 이어지는 홍콩 시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우리.

물처럼 싸우던 그들을 변화시킨 사건들. 홍콩 역사의 전환점이 될 민주화 시위.

2019년 6월 12일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

6월 25일 경찰과 대치하던 한 시민의 투신자살. 

7월 1일 홍콩의회를 점거한 시위대.

10월 1일 중국 국경절에 경찰 실탄 발사.

11월 8일 대학생이 최루탄을 피하다 사망.

홍콩이 영국통치에서 중국에 반환되던 날

불과 23년전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

1997년 7월 1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됨.

1982년 홍콩 반환을 논의한 중국과 영국.

그런 불안에 중국이 한 약속이

홍콩인에게는 딱 와 닿는 말이에요.

말= 경마= 홍콩인의 여가문화

춤= 유흥과 오락의 상징임.

경마의 도시 홍콩은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져온 문화로 누려왔던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로운 삶의 유지를 약속함.

주권은 중국으로 반환돼고.

사회주의 국가 안에 자본주의 도시...?

역사에 없었던 독특한 제도죠. 일국 양제.

중국이 약속한 말과 춤이 뜻하는 것.

이 말에는 굉장히 중요한 상징이! " 정치적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다."

" 경제적 자유만 허용하겠다."

고도의 자유 경제라는 특수성으로 현혹. 경제도시로 규정돼온 홍콩.

당시 다수의 홍콩인마저도 정치적 민주는 얻지 못하지만 경제적 자유와 번영이 진정한 자유라고 낙관함.

그생각이 작년 시위에서 깨지기 시작한거에요.

작년 시위가 불러온 홍콩의 변화.

"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정상이 바로 문제였기 때문이다."

글자는 중국 표준어로 쓰지만 광둥어로 읽어야 홍콩스타일임.

홍콩인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홍콩 역사상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2019년 홍콩인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시위의 발단은 2018년 살인사건때문이에요.

함께 대만 여행을 하던 중 여자친구를 살해한 홍콩인.

2018년 3월 13일 홍콩 당국에 체포된 남자.

홍콩은 국외에서 일어난 범죄는 처벌이 불가능함. 살인죄 적용 불가임.

자국민을 타국에 인도할때 법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죠.

각 나라간에 범죄자 인도 요청시 인도하게 돼 있는 조약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이에요.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홍콩과 대만. 범죄인 인도 불가함.

현재 법안에 따르면 홍콩은 중국 본토, 대만, 마카오에 범죄인을 인도할수 없음.

2019년 3월 홍콩정부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발표.

2019년 홍콩인들은 개정안 반대 시위를 시작함.

살인사건만 보면 필요해 보이는 개정안이지만 홍콩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홍콩인들이 개정안을 반대한다고해서 살인사건을 처리하지 말자는게 아니고

홍콩 정부가 불과 1년후 개정안을 발표함.

개정안의 핵심은 범죄인 인도 절차를 간단하게 수정.

홍콩 최고 지도자인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를 결정하면 홍콩 의회의 겨넺와 감독 없이 


홍콩 시민 인신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

홍콩 행정장관은 시민이 선출하지 않은 지도자. 송환법 개정을 밀어붙인 홍콩 정부.

홍콩정부는 겨우 20일만에 여론을 수렴함. 중국정부가 악용할 것을 두려워한 홍콩인들.

송환법 개정안대로 되면 중국 본토를 비롯한 타국의 사법 체계에 따라 판결을 하는데

홍콩의 법적 보호를 못 받는 상황이 됨. 4년전 발생해 이런 두려움을 알게 해준 사건.

2015년 홍콩 서점 실종 사건이 발생.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홍콩. 홍콩의 댜앙햔 독립 서점들. 본토에서 출판할수 없는 금서를 판매.

여러 인문사상, 사회운동 등 다양한 책을 팔고 한 홍콩 서점에서 실종사건이 발생함.

서점 관계자들이 줄줄이 사라짐.

다양한 방식으로 잡혀가 조사를 받앗고 8개월 만에 홍콩에 돌아온 서점 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을 밝힘.

반정부 서적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중국 본토와 홍콩은 협정을 맺지 않았음에도 홍콩인이 체포되는 일이 발생함.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추진되자 대만으로 망명한 점장.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홍콩인 뿐만 아니라 홍콩에 있는 외국인도

홍콩에 체류하거나 심지어 경유하다가도 중국본토를 포함해 타국에 인도돼 처벌받을수도 있다고함.

국제 사회에 동조를 구한 홍콩인들.

세계 신문에 실린 홍콩인의 광고.

홍콩 시민들이 9시간 만에 10억원 모금해 광고를 게재.

국제도시인 홍콩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호소. 미국과 영국 국기를 들고 시위하기도 함.

홍콩을 식민 지배했던 영국 국기를 든 홍콩인들.

그것은 단순한 생각!!

혹독한 식민 통치를 받아온 홍콩.

왜 홍콩인들은 식민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일까.

홍콩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현재를 이해할수 있을 것.

19세기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패배한 청나라.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의 영토 일부를 영국이 차지함.

척박햇던 홍콩섬. 자유 무역항으로 발전함.

1842년 할양 당시 5천여명이 살던 홍콩섬. 20세기 청 왕조의 몰락과 근대화 혁명이후

열강의 침략과 내전을 겪은 중국. 중국 본토가 혼란할 때마다 중국인들의 피난처가된 홍콩.

중국인의 피난처로 출발한 홍콩의 역사.

인종차별적이었던 영국의 통치. 채찍형 야간 통행 금지 등 악법을 시행.


혹독한 식민 지배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이주함.

미련없이 떠날 잠정 거주지였던 홍콩. 홍콩의 변화를 위해 나설 의지가 약했던 실향민들.

" 식민 시절 홍콩인들의 마음속 고향은 본토."

유학때 만난 홍콩인도.

홍콩인들의 홍콩부심이 있는데 본토인 입장에서는 불편하다고함.

강렬한 홍콩인의 정체성이 형성된 계기가 있는데 홍콩 역사의 전환점이 된 사건.

홍콩의 공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시위가 발단이 됨.

파업 노종다를 강경 진압한 경찰. 식민 통치와 경찰에 대한 반감이 증폭.

당시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중국 본토.

자본주의와 낡은 사상 타도라는 명목하에 학살과 탄압이 자행됨.

식민 통치와 경찰에 분노가 증폭될 시점. 본토의 좌파 세력이 합세하며 격렬해진 시위.

극렬한 시위로 50여명이 사망을 함.

총과 폭탄 테러가 난무한 폭등. 67폭동으로 홍콩인들에게 각인된 것은 식민 통치에 대한 불만을 망각.

중국 본토에 대한 두려움. 정치행동에 대한 공포심.

번영과 안정을 위협하는 것은 중국과 공산주의임. 67폭동이후 홍콩인 정서의 기반이된 반공.

홍콩인의 마음을 잡기 위해 변화를 도모한 영국.

교육 의료, 복지를 대폭 확대. 공공임대주택과 지하철 건설.

1974년 염정공서인 반부패 수사 기구를 설립.

식민통치에 대한 홍콩인의 핵심 분노였던 경찰 부패를 척결.

홍콩에 심어진 정체성은 공산국에 맞선 자유 세계의 보루.

67폭동 이후 만들어진 홍콩의 황금기.

홍콩 통치를 이어가기 위한 전략이 영국은 중국보다 우월한 통치를 하려고 노력함.

국방과 외교는 중국이 영국이 만든 제도는 50년간 유지함.

빼앗겼던 홍콩 주권의 반환을 강력히 요구함.

영국은 통치 명분을 잃고 홍콩에 반환을 결정.

덩샤오핑이 한 이야기

50년동안 중국도 발전해 있을 것.

50년 뒤에도 변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뜻이지만 문제는 정해지지 않은 거죠.

일국양제는 2047년까지~

작년 시위에서 가장 절박했던 젊은 세대의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안.

홍콩의 앞날을 위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 홍콩인. 일국 양제라는 약속을 믿은 홍콩인.

반환을 앞두고 일어난 결정적 사건이 있음.

1989년 중국 천안문 사건.

무차별 공격으로 1만 5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

대규모 성원 시위에 나선 홍콩인들. 150만 홍콩인이 민주화 시위를 응원.

정부의 무력으로 진압함. 홍콩인들을 인터뷰하면 진압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 지켜보며 많이 울었다"

본토인의 힘겨운 싸움에 함께 아파한 홍콩인.

어느때보다 본토인을 동포로 가까이 느낀 순간 그들의 삶을 처참히 짓밟는 나의 조국을 목격.

더 극명해진 반환에 대한 두려움.


중국내 시위를 지지하는 홍콩인을 보며 반중이라고 생각함.

중국이 더 좋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목소리. 매년 6월 홍콩에서 열리는 천안문 추모 집회.

반환을 코앞에둔 홍콩인들.

민주에 대한 열망이 탱크에 짓밟힌 순간

정치 행동에 대한 무력감에 빠진 홍콩인들.

홍콩에 민주를 허용한 최후의 총독.

반환을 앞두고 허용된 민주주의. 정치적 자유를 불허했던 영국은 반환이 결정되자 조금씩 허용을 함.

반환 직전 대폭적인 민주화 실시.

1984년까지 의회 의원 모두 임명.

1985년엔 일부 의석을 간접 선거제도인 직능대표제로 선출.

다양한 직업군이 있지만 상당수가 기업가임.

기업인이 정치를 하게 되는 구조임. 같은 직종의 유권자가 투표로 선출됨.

기업을 많이 소유할수록 행사할 표가 많아져 사회경제적 자원이 많을수록 의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됨.

과도기적으로 그때는 받아들인 홍콩인들.

1991년 최초로 의회 일부 의석에 직선제를 허용.

패튼 총독이 의회의 임명 의석을 폐지.

반환을 앞두고 주어진 민주주의. 이에 반발한 중국.

중국은 반환 직전 모든걸 무효화시킴.

반환직전 홍콩인들에게 각인된 강렬한 기억. 자유와 민주를 주었던 영국.

모든것을 앗아간 중국.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 

1997년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IMF 외환위기잖아요. 아시아 금융 위기로 직격타를 맞은 홍콩.

홍콩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게됨. 2003년 사스 발발.

사스로 홍콩에서 299명이 사망함. 사스 이후에 일종의 선물처럼..

48개 서비스 분야를 개방함. 홍콩 제품을 무관세로 본토에 수출.

본토인의 홍콩 자유 여행을 허가. 무너져가던 홍콩의 경제가 부활하게 됨.

국력이 급상승 중이었던 중국. 2003년엔 첫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 발사.

당시 일국양제에 대한 홍콩인의 믿음은 몇퍼센트 됐을까요?

홍콩인이면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긴 홍콩인. 암흑기와 함께 찾아온 밀월기.

자유 여행 허가로 본토인이 몰려오며 갈등과 변화가 시작함.

본토인들의 투자 이민으로

거의 평당 1억에 거래되는 홍콩집값.

홍콩인 평균 월급 30년 모아야 8평집 마련이 가능함.

본토인의 대거 이주로 삶의 변화를 맞이한 홍콩인. 도시 임대료가 높아지고 동네 상점이 쫓겨난 자리엔

본토인들을 위한 금은방이 즐비함.

도리어 홍콩인이 홀대받는 느낌이 됨.

본토인이 홍콩에서 출산한 자녀는 홍콩 영주권 취득.

홍콩은 누구의 도시인가? 변화한 홍콩 거리에서 자유와 민주의 상실을 느끼다.

2010년대 여러 주요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2012년 홍콩정부는 홍콩에서 중국식 애국 교육을 추진.

본토의 애국 교육을 홍콩에서 추진함.

10대가 홍콩 무대에 등장합니다.

2012년 홍콩 청소년을 깨운 국민교육 사건.

청소년 10만명이 시위에 나서자 그동안 시위에 나서지 않던 부모 세대가 거리로 나옴.

결국 홍콩 정부는 애국 교육 의무화를 철회함.

이때부터 민주화 시위의 주역이 된 청소년들. 젊은 층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는 듯.

현재 홍콩 의회 의원 선거는 어떻게 할까?

의석 절반은 직선제.

400만 유권자중 직능대표자 유권자는 불과 약 23만명임.

관련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수백만 홍콩인들.

35서의 유권자가 될수 없는 제도. 간접선거는 직능별 선거인단이 행정장관을 선출.

선거위원 18명을 가진 홍콩 고용주연합회.

경제력에 따라 투표권한이 달라져요.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 기형적인 지도자 선거제도.

2019년 행정장관이 젊은 시위대를 향해 한말.

경제적으로 공헌해야 시민의 권리를 갖는다.

식민 시대부터 뿌리내린 잘못된 관념임. 단지 한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홍콩 역사속에 축적돼온 관념인거에요. 경제력이 곧 권리라고 여겼던 과거.

정치적 민주의 부재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함.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기형적 선거제도임.

더구나 홍콩 행정장관은 중국정부가 최종 임명함. 반정부파가 지도자로 뽑히긴 어려움. 그 핵심에 직능대표제가 있는 것.

반환 후의 홍콩법=  홍콩 기본법임.

기본법에 명시된 행정장관 선거제도.

보통선거 시점은 불분명함.

직접 선거시점은 2017년으로 기대. 2014년 8월 중국 정부의 발표.


선거인단이 뽑은 후보자중에서 직접 선거가 가능한데 사실상 직접 선거를 불허한거임.

홍콩인들이 폭발함.

2014년 다시 거리로 나온 학생들.

2014년 지도자 직선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학생들.

시위하는 학생들을 체포한 경찰. 정당한 요구를 하는 아이들을 체포하는 공권력에 분노를 함.

" 우리 어른들이 싸우지 않아서 젊은 세대가 힘들어하는 것."


함께 싸우자, 각성한 어른 세대. 홍콩 도시를 가득 채운 50만명의 시민.

2014년 대규모 민주화운동인 우산시위.

경찰이 최루탄을 난사하자 우산으로 막은 시위대.

평화적 저항의 상징인 우산.

시위대 요구에 응하지 않은 중국정부. 평화적 시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평화 시위를 주장하는 평화파.

갈등과 분열이 생긴 시위대. 79일 이후 정부가 강제 해산할 때 분열이 생긴 상태에서 무력하게 해산당함.

79일만에 도시에서 사라진 우산 행렬. 

분열된 상태에서 해산됐기에 이후 5녀간 많은 사건이 발생함. 단결해서 저항할수 없었던 홍콩인들.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작년에 200만 시민이 시위에 참여함.

송환법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 ! 다수의 시민이 반대하는 법안들이 통과됐기 때문임.

시위도 할수없게 되는 현실이 됨. 신체의 자유가 침해될수 있다는 공포.

우리는 목소리도 낼수 없을 것.

홍콩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싸움임. 5년만에 침묵을 깨고 다시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

폭동의 역사속에서 각인된 두려움을 딛고 동포의 처참한 희생을 기억하며 먼길을 돌고 돌아 민주화 기로에 선 홍콩인.

이전과 달라진 홍콩 시위.

2014년 우산 시위때는 미착용했는데 얼굴을 다 드러내고 SNs SNs에도 올리고 그랬는데

시위하며 신분을 노출하면 언제어디서 잡혀갈지 모른다.

처음부터 얼굴을 가린 시위대.

그리고 지도자의 부재.

지도자가 잡히면 힘을 잃는 시위. 모두가 이 시위의 주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단결이 안 돼서 무력하게 해산했던 지난 시위.

이번만큼은 분열하지 않겠다.

실패 사례를 발판 삼은 홍콩인들.

그런데 시위는 더 격렬해짐.

법안 하나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음. 시위 과정에서 겪은 돌이킬수 없는 일들.

2019년 8월 31일 경찰이 지하철에서 시민을 폭행.

시위대와 시민 구분없이 무차별 진압을 함.


2019년 10월 1일 경찰이 고등학생에 실탄 공격.

지하철은 정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일상 공간에서 상상도 할수 없던 폭력이 행해지자

정치적 민주가 없으면 일상도 없다.

우리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일들. 폭력단의 정체는 알수 없음. 정확한 실상을 알수 없음. 그것을 조사하지 않으니까.

작년 시위대의 요구중 하나가 경찰의 폭력에 대한 독립적 조사였음.

명확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저런 일이 홍콩의 일상이 돼버리기 때문임.

이번 시위를 겪으며 바뀐 관념.

67폭등 천안문사건, 혼란한 역사에서 각인된 두려움.

물리적 폭력에 대한 공포. 비폭력이 중요한 신조. 작년에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정부가 법이 제도가 폭력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일까? 2019년 복면금지법을 시행. 위반하면 감금 1년.

2019년 10월 4일 지도자의 결정만으로 당일밤부터 시행됨. 식민 시절에 만들어진 악법으로 의회 승인없이 발동하는 긴급법.

긴급법 자체가 무서운게 긴급법을 발동하면 무슨법이든지 지도자 결정으로 시행 가능함.

복면 금지법이 시행됐을때  두려워서 못나오지 않을까 햇지만 긴급법 악용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

2016년 일어난 사건.

시민들이 선출한 6명의 의원 자격을 중국 정부가 박탈함.

제도적 폭력을 생각하게 한 여러 사건.

시민을 대표하지 않는 의회. 시민이 원하지 않는 법안.

제도적 모순도 폭력이 아닐까? 민주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홍콩인.

시위의 핵심요구는 의회와 지도자의 직접선거임.

다양한 세대 간의 단결.

우리에겐 청년의 미래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식민지 세대로서 싸우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 정치에 대한 두려움을 뼛속까지 가졌던 이들.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해 함께 목소리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주제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잖아요. 이노래가 홍콩에서 어머니 집회에서 불렸던 것.

천안문 희생자 부모들의 아픔을 공감하기에 우리는 오늘 일어선다.

일상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홍콩인들.

계속되고 있는 홍콩인들의 저항. 한국의 홍콩 유학생들이 지지를 호소하자

본토 유학생들이 위협을 함. 홍콩인과 본토인 사이의 깊어지는 반감.

본토인과 홍콩인은 끊임없이 서로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본토인이 시위 지지하다 체포되기도함

참 슬픈 것은 서로 모른다는 것.

언론의 통제로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한 진심. 홍콩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 대만.

2020년 9월 홍콩 입법회 선거의 결과는?

2019년 11월 작년에 실시한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2020년 입법회선거 2022년 행정장관 선거 예측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홍콩인이 무력감을 지금도 느끼는 것은 사실 싸워야 할 대상이 홍콩 정부 뿐 아니라 멀리있는 중국 정부이기도 하고

거인과의 싸움에 한계와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임.

한국도 수십년 싸워서 지금의 한국이 됐듯이 우리도 권리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싸운다면

언젠가 때가 왔을때 그때의 홍콩은 다르지 않을까.

수십년후를 준비하자. 긴 싸움을 시작한 홍콩인.

한 홍콩인 친구가 보내준 사진이 있다고함.

굉장히 고통스럽게 새로운 홍콩을 만드는 과정임.

그들이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지 꼭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역사임.

우리가 당연한듯 누리는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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