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vs 18위 백제의 마지막 왕은 따로 있었다?
나당 연합군에 맞서 싸운 백제 마지막 왕은?
보통 의자왕으로 인식되는데 백제의 풍왕은 누구일까?
백제 마지막 왕의 진실은? 정사에는 기록되진 않은 역사. 조선 역사학자 안정복의 역사서인 동사강목을 보면
백제의 마지막 왕은 31대 의자왕이 아니라 32대 풍왕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도 풍왕을 마지막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의자왕의 아들 풍왕을 백제 마지막 왕으로 추측하고 있죠.
그러나 우리에게는 낯선 백제의 마지막 왕인 풍왕, 660년 백제 함락 이후, 당시 일본에서 생활 중이던 왕자 부여풍, 백제 부흥군에 의해 32대 왕 풍왕으로 옹립.
661년으로 추정되는데 백제로 귀환한 풍왕.
하지만 오랜 타국 생활로 지지 기반이 부족, 대장군 복신과 권력 다툼에 휘말린 풍왕. 지도부의 분란을 눈치챈 당나라는 백제군을 공격합니다. 663년 전력을 잃은 백제군은 백강 전투에서 대패합니다.
주류성마저 점령 당하며 완전히 멸망합니다.
타국에서의 보장된 안전 대신 백제의 부흥을 선택한 풍왕. 역사의 패배자가 된 백제. 그래서인지 부족하거나 베일에 싸인 백제 관련된 역사, 힘없는 망국의 역사때문인지 패장의 굴욕때문인지 짧게 불타올랐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사라진 풍왕.
어쩌면 그가 백제의 진짜 마지막 왕일 수도 있습니다.
1위 vs 18위 행주치마의 유래 사실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의 오류들이 많죠. 행주치마가 왜 행주치마인가? 그 유래는?
사람들은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행주 대첨때 마을에 살던 아낙네들이 힘을 합쳐서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날랐기 때문에 행주치마! 라고 말했죠. 일부 교과서와 문헌을 통해 마치 사실처럼 전해지는 중이죠.
행주치마 이름의 진실은?
행주치마라는 이름은, 1593년 행주 대첩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517년.
사성통해에서 이미 사용되었는데 행주치마는 부엌일을 할 때 두르는 헝겊을 의미할 뿐, 다행 행, 고을 주 한자를 사용.
행주산성, 행주대첩과는 무관해요.
행주 대첩은 실제 일어났으나, 행주치마의 이름과는 무관합니다. 마침 발음이 같은 단어가 공통 포함되었을 뿐.
스토리텔링이 가미돼 전해진 근거 없는 썰.
실제로 국사 편찬 위원회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다만 행주 대첩 당시 돌멩이를 날랐다는 건, 진실입니다. 실제 역사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아낙네들이 아닌 백성들이 마대 자루를 앞치마처럼 두른 채 돌멩이를 날랐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다 보니, 근거 없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굳어지기도 하죠. 물론 행주치마와 행주 대첩 그 이름의 연관성은 없지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관군과 의병들이 적과 대항해 직접 싸웠다면 아낙네들은 여성들은 화공에 대비해 물을 길어 오고 빨래를 하고, 부상병을 돌보는 등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우리가 알던 행주치마의 어원이 낭설에 불과하다고 해서 전란당시 여성들의 공과 희생까지 거짓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일!!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단지 단어의 어원에 대한 오류가 있었을 뿐.
행주치마의 어원과 행주 대첩은 무관하지만, 행주 대첩 외에도 수많은 전투 현장에 있었던 아낙네들의 공과 희생만은 진실이죠.
1위는 행주치마의 유래, 사실은? 입니다.
출처: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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